탈무드에서 읽는 랍비의 지혜, 네번째
배움이 황금보다 중요하다
기원전 2세기경의 유대교 대제사장, 히르카누스는 드넓은 토지와 많은 가축을 소유한 부자였다.
매일 아들들과 함께 밭에서 땀흘려 일하는 게 그의 일과였다.
그런데 어느 날, 엘리에셀이란 아들이 걱정과 고민에 사로잡힌 표정이 눈에 밟혔다.
히르카누스는 엘리에셀을 며칠 동안 조용히 지켜보았다.
며칠 후에도 여전히 침울한 표정인 것을 보고, 히르카누스는 아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엘리에셀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훌쩍일 뿐이었다.
히르카누스는 아들이 자신에게 부과된 일을 힘들어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는 다른 일을 맡겼다.
하지만 엘리에셀의 우울한 모습을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히르카누스는 아들에게 이유가 뭐냐고 윽박질렀고, 엘리에셀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말했다.
“아버지, 저는 정말 율법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히르카누스는 아들의 열망에 놀랐지만, 당시 엘리에셀의 나이가 이미 28세였던 까닭에 그 꿈을 단념시키려고 애썼다.
오히려 엘리에셀에게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자식들에게 율법을 공부할 기회를 주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삽화)
엘리에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머릿속에 맴도는 한 가지 생각에만 사로잡혀 먹지도 못하고 잠을 깊이 자지도 못했다.
그러나 얼마 후 그가 들판을 정처없이 걷고 있을 때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슬퍼하느냐? 정녕 율법을 공부하고 싶다면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유명한 스승, 벤 자카이의 학교에 들어가거라.”
엘리에셀은 그 목소리에서 영감을 받은 듯 그대로 행동에 옮겼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예루살렘으로 떠났다.
엘리에셀은 그 학교에 도착했지만 선뜻 들어가지 않고, 문앞에 말없이 서 있었다.
잠시 후, 벤 자카이가 그를 보고는 그렇게 침울하게 서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엘리에셀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슬픕니다. 하지만 정말 공부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율법을 공부한 적이 전혀 없는가? 셰마는 암송할 수 있는가?”
“모릅니다. 아는 것이 없습니다.” 엘리에셀이 흐느끼며 대답했다.
벤 자카이는 성품이 선했던 까닭에 그를 위로하고는 가르치기 시작했다.
엘리에셀은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고, 배우려는 열정도 대단했던 까닭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학생을 훨씬 앞질렀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엘리에셀은 출중한 율법 선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 사이에 형제들은 엘리에셀의 상속권을 박탈하라고 아버지를 독촉했다.
그들이 끊임없이 엘리에셀의 행동을 비방한 까닭에 히르카누스는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다.
결국 히르카누스는 아들들의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히르카누스는 엘리에셀의 상속권을 박탈하고 유산을 정리하려고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마중나온 친구들이 그를 벤 자카이의 학교로 데려갔다.
그때 벤 자카이는 학교에서 연회를 열어 예루살렘의 저명 인사들을 접대하고 있었다.
히르카누스도 환대를 받았고, 엘리에셀의 옆자리로 안내되었다.
그러나 엘리에셀이 집을 떠난 후에 외모가 크게 변했기 때문에 히르카누스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연회가 무르익자, 벤 자카이는 엘리에셀에게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아들아, 너의 지혜를 마음껏 토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일어나서 경전의 가르침에 대해 말해보거라.”
엘리에셀이 겸손하게 대답했다.
“스승님, 물그릇은 담을 수 있을 만큼의 물만을 토해낼 수 있을 뿐입니다. 스승님이 모르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벤 자카이가 대답했다.
“아들아, 샘을 보거라. 과거에도 많은 물을 쏟아냈지만 앞으로도 더 많은 물을 쏟아내지 않겠느냐. 일어나서 경전의 가르침에 대해 말해보거라.”
스승의 명령을 받아들여 엘리에셀은 강론을 시작했다.
그의 두 눈은 영감의 빛으로 반짝거렸고, 그의 입에서 지혜가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벤 자카이는 감격에 겨운 나머지 그 영민한 제자의 이마에 입맞춤하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히카르누스의 축복받은 아들이여! 이런 뛰어난 학자가 있으니, 이스라엘은 정말 복받은 나라입니다!”
히카르누스는 깜짝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누구를 말씀하신 겁니까?”
벤 자카이가 대답했다.
“엘리에셀을 말한 겁니다. 바로 당신 옆에 앉아 있는 젊은이가 엘리에셀입니다.”
히카르누스는 마침내 아들을 알아보고는 크게 껴안았다.
“정말 기쁘구나. 너 같은 아들을 두다니! 너의 상속권을 박탈하려고 예루살렘에 왔지만, 이제 네 형제들의 상속권을 박탈해야겠구나. 너에게 나의 모든 재산을 물려주겠다!”
엘리에셀이 서둘러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버지. 제가 밭과 가축을 탐냈다면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에게 기도할 때 그것들을 간구했을 것입니다. 제가 황금을 탐냈다면 황금을 간두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재물의 주인이시니까요. 하지만 저는 오직 말씀을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제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저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셰마: 매일 아침과 저녁에 암송하는 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