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용도
배움도 바람직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지만,
선행은 배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지혜를 공부하지만 그 가르침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집은 없이, 커다란 대문만을 세운 사람”에 비유된다.
종교에 담긴 철학을 이해하지만
하느님을 진실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집안 곳곳의 방문 열쇠들은 가졌지만
대문 열쇠를 갖지 않은 사람에 비유된다.
대문 열쇠가 없는데 어떻게 집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랍비 엘르아살은 이렇게 말했다.
“선행보다 배움이 많은 사람은,
줄기는 가늘고 나뭇잎은 울창한 나무와 같아
약한 바람에도 뿌리채 뽑힐 수 있다.
그러나 큰 배움을 없을지라도 도덕적이고 방정한 사람은
나뭇잎은 많지 않아도 줄기가 튼튼한 나무와 같아
거센 태풍도 그 굳건한 뿌리를 흔들지 못한다.”
거듭 말하지만,
지혜의 궁극적인 목적은 회개이고 선행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하느님의 율법을 안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미덕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보상이 있기 마련이다.
선행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더하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사는 것보다
아예 태어나지 않았던 것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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